또 닦아라, 똥꼬야
기린면 서2리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옛날에는 소금장수 직접 돌아다니며 소금을 팔았다고 합니다. 소금값을 비싸게 받기 위해서 시골의 산속으로 많이
다녔다고 합니다. 한 소금장수는 무거운 소금 가마니를 지고 고개를 넘어서 소금을 팔러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한 고개, 두 고개, 세고개를 아주 힘들게 소금을 지고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동네 하나가 보였습니다. 동네에 도착하니 농사꾼들이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소금장수가 힘들게 고개를 넘다보니 갑자기 똥이 마려웠습니다. 그래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여기, 변소가 어디 있소?”
한 농사꾼이 대답했습니다.
“여기가 밭인데 뭔 변소가 따로 있소. 거 아무 데나 누고 싶은데 누시오"
그래서 소금장수는 소금 지게를 내려놓고 풀숲에 들어가서 똥을 누었습니다. 그런데 똥을 누고 나니 마땅히 밑을 닦을 것이 없었습니다.
급히 똥이 마려워서
종이를 따로 마련한 것도 아니고, 옆에 밑 닦을 만한 나뭇잎도 없었습니다. 반반한 돌이라도 있으면 닦을 수 있을 것인데, 그것마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밑 닦을 것을 찾다가 손에 잡히는 것이 있어 보니, 웬 송장 뼈다귀였습니다. 허연 것이 밑 닦기에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그 남자는 아무 생각 없이
송장 뼈다귀를 들고 ‘스슥’ 밑을 닦았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뼈다귀가 말을 하는 것이었다.“또 닦아라, 똥꼬야. 또 닦아라, 똥꼬야”
소금장수는 기겁을 하고 바지를 얼른 추스르고는 소금지게를 지고 줄행랑을 놓았습니다. 정말 걸음아 나 살려라고 소리를 치면서 도망을 갔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도망하다 보니, 배가 몹시 고팠습니다. ‘또 닦아라, 똥꼬야’라고 소리치며 따라오던 뼈다귀도 따라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소금장수는 주변에
보이는 한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 집에 들러서 부탁을 했습니다.
“지나가는 소금장수인데 배가 몹시 고파 그러니 밥 좀 주세요.”
마침 그 집에서는 빨강치마에다 노랑저고리를 입고 하얀 앞치마를 한 어떤 젊은 여자가 나왔다. 그래 소금장수가 그 젊은 여자에게 밥을 얻어 먹을 수
있는지 부탁했습니다. “밥 좀 얻어먹고 갈 수 없소? ”그 여자는 순순히 밥을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방에 소금장수를 들어오라 하고는 부엌에 나가서 밥을 차렸습니다.
있는 것 없는 것 잔뜩 차려 밥상 가득
음식을 내왔습니다. 소금장수는 마침 배가 몹시 고프던 터라 젊은 여자가 차려주는 밥을 허겁지겁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렇게 밥을 먹다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보니, 밥상을 차려준 여자가 재주를 넘고 있었습니다. 재주를 세 번 홀짝홀짝 넘더니 어느새 도깨비로 변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방망이를 들고는 밥을 먹고 있는 소금장수에게로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아까 밑을 닦았다가 쫓아오면서 소리치던 뼈다귀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닦아라 똥꼬야. 또 닦아라, 똥꼬야.”
도깨비가 슬슬 다가오자 소금장수는 밥을 먹다 말고 얼른 그 무거운 소금지게를 지고 뛰기 시작했습니다.
뼈다귀로 소금장수가 똥을 닦자 그 뼈다귀가
도깨비로 변한 것이었습니다. 도깨비는 소금장수가 소금지게를 지고 고개 몇 개를 넘을 때까지 쫓아오면서 계속 말했습니다.
“또 닦아라, 똥꼬야.”
소금장수는 실수로 뼈다귀로 밑을 닦았다가 아주 큰 봉변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뱀의 원한을 사서 과거급제 못할 뻔한 사람
기린면 서2리에서 전해오는 이야기입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어렸을 때 겪었던 일입니다. 길을 가다가 뱀을 만나서 갖고 있는 작대기로 뱀을 때렸는데,
뱀이 죽지 않고 허리가 잘린 후 대가리만 내빼서 도망을 갔습니다.
그 사람은 그 후 그런 사실을 까맣게 잊고 지냈고.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어 서울로 과거 시험을 보러 가게 되었다. 시험을 보기 전에 합격할지 궁금해서 점을 보았는데 점괘가 이상하게 나왔습니다.
“서울에 과거 시험을 보러 갔다가 죽지 않으면 합격을 하고, 죽으면 합격을 못한다."
그 사람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서울에 과거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지금은 차를 타고 서울에 가면 금방 가지만, 옛날에는 걸어서 가야 하므로 한 달 이상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걸어가다가 밤이 되면 주막에서 자고 다음 날이 되면 또 걸어가야 했습니다. 그렇게 서울에 도착하여 과거를 보게 되었습니다. 과거
시험을 끝내고 집으로 오는 길에 날이 저물어 잘 데가 없어 난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막 헤매고 있는데 저 멀리서 하얀 불이 보였습니다. 다행이라
여기고 그집으로 가서 주인을 불렀습니다.
“계십니까?”
아주머니의 대답이 사정을 말했습니다.
“날이 저물어 그러니 자고 가도 됩니까?”
아주머니가 순순히 자고 가라고 하였습니다.
“예 그러세요.”
오막살이 같은 집의 방에 들어가니, 아주머니가 먹을 것을 내왔습니다. 밥을 먹고 앉아 있다가 아주머니가 길쌈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근데 아주머니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혀가 두 가닥이 나와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혀가 두 가닥이면 뱀인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때 전에 보았던 점괘가
떠올렸습니다.
‘죽지 않으면 과거 시험에 붙는다.’
그리고 아주 어렸을 때 뱀을 때려잡은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때 뱀 대가리가 살아서 도망간 것이 기억난 것입니다.
그 사람은 ‘이 집을 나가겠다’고
생각하고는 집을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그 여자는 못 가게 막으며 말했습니다.
“아, 이 밤중에 이런 집을 두고 어디를 갑니까?"그 사람이 거기 있으면 죽을 것을 아는데 그곳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억지로 집을 나서자마자 있던 집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있는 힘껏 도망을 쳤습니다. 그렇게 도망을 치는데 ‘쓰록 쓰록 으르륙’ 하면서 뱀이 쫓아오는 소리가 났습니다. 쫓기다가 고개를 올랐더니 가까운 곳에 불이 켜진
집이 보였습니다. 그 사람은 그 집으로 뛰어들면서 소리를 쳤습니다.
“사람 살려 주세요"
그 집에 들어가니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제서야 안심을 하고 그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이 되어 일어나 주변을 살펴보니 그곳은 집이 아니라, 자신의 조상을 모셔 놓은 묘가 있는 산이었습니다. 조상 묘 옆에서 하룻밤을 잔 것이었습니다.
일어나서 자세히 살펴보니 무덤 옆에 개 모양의 돌이 있고,
그 옆에는 커다란 뱀이 죽어 있었습니다. 조상과 개 모양의 돌이 뱀을 물리치고 후손인 그 사람을 지켜 준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 그 사람은 과거에
합격하였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그 후로 잘 살았다고 합니다.
기린면 북리에는 길이가 4km 이상이나 되는 골짜기가 있습니다. 아득한 예전에 이 골짜기에 개도 아니고 여우도 아닌 짐승이 밤마다 시끄럽게 울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까닭에 이 골짜기를 가리켜 ‘기린이 울었다’하여 인명골(麟鳴谷)이라고 불러오고 있습니다.
지금의 “기린”이라는 지역의 이름도 전설의 동물인 기린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사슴이 100년 이상 묵으면 기린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이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는 “장수바위”에는 조선시대 말 명장들이 한양에서 영동지방으로 넘어갈 때면 들려서 자연을 만끽하며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쉬었다 가곤 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지금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어 전설로만 남아 있습니다.
기린면 방동리에 전해오는 이야기로, 지금으로부터 약 300여년 전에 심뫼마니인 한 노인이 사시사철 이 산에 이르러 몸을 단정히 하고 매일같이 산신에게
정성을 드렸다고 합니다. 하루는 심뫼마니의 꿈에 하얀 도복을 입은 백발 노인이 나타나 말하였습니다.
“나는 이 산의 산신령이다. 사시사철 정직하게 나에게 지성을 다하니 내 어찌 너의 지성을 지나칠 수 있겠느냐, 내가 너에게 산삼을 주리라 그리고 그
산삼이 있는 곳, 깊은 땅 밑에 만병통치수가 있으니 세상사람들에게 널리 알리어 그 약수로 하여금 병들은 사람들을 먹게 하여 낫게 끔 하라”
백발 노인이 사라지고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이상히 여긴 심뫼마니 노인은 다음날 여느 때와 똑같이 산삼을 캐러 가는데 갑자기 동자가 나타나서 손짓으로
오라고 하기에 그 곳에 가보니 동자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육구만달(제일 큰 산삼) 산삼이 있었다고 합니다.
심뫼마니는 정성들여 산삼을 캐어 바구니에 담아 놓고, 꿈에서 만난 백발 노인의 말대로 땅 밑을 파보니 땅 밑에서 약수가 솟아났습니다. 심뫼마니 노인은 그
후부터 세상 사람들에게 만병통치의 약수를 알리면서 살아왔고 병 든 사람들은 이 약수를 먹으면 즉시 효력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 후부터 이 방동약수에는
찾는 이가 늘어났으며 지금도 전국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