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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의 파리먹이

미산 1리 고목동(古木洞) 어귀의 파리먹이에 얽혀 전해오는 이야기입니다. 조선 선조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이율곡 선생의 부친이 길을 가다 해가 저물어 주막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걷다보니 피곤하여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꿈에 갓을 쓰고 흰 옷을 입은 도사가 나타나 말하였습니다.

“너의 아들이 수명이 길지 못하다.”
부친은 어떻게 하면 아들의 수명이 길게 할 수 있는지를 물었더니, 도사님는 순식간에 호랑이로 변하더니 말하였습니다.
“이곳에다 밤나무 천 그루를 심고 떠나라.”

도사님이 사라짐과 동시에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부친은 이율곡 선생과 아침부터 서둘러 며칠을 묵으면서 밤나무를 구하고 심었습니다. 마지막 나무를 심던 날 낮에 꿈에 본 호랑이가 다시 나타나 물었습니다.

“밤나무 천 그루를 다 심었느냐?”부친은 다 심었다고 하자 호랑이는 밤나무를 세어보기 시작했습니다.
“999그루 밖에 안 되잖아. 한 그루는 왜 안 심었느냐?”

부친은 당황하여 멍하니 정신을 잃고 있는 데 옆에서 잡목 한 그루가 나타나더니 말하였습니다.
“나도 밤나무”

이 말을 들은 호랑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사라졌고 부친은 잡목 때문에 화를 면했다고 합니다.
튀어나온 밤나무는 열매를 맺기는 하였으나 알맹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다른 밤나무들과 같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오래된 밤나무가 많아 고목동이라고 부르고, 이곳 지형 모습이 파리먹이와 비슷하여 파리먹이로 불린다고 합니다.

추갑산과 구미호

상남면 하남 2리 선래동(仙來洞)은 앞뒤가 산과 바위로 막힌 깊은 산골입니다. 그러나 기암절벽과 산수의 경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아 예부터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놀던 곳이라는 뜻으로 선래동이란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이곳은 7세대가 정착해 살고 있었습니다.

때는 조선시대 중엽으로 이 마을에 추씨라는 사람이 사냥에 의존하여 하루하루 생활을 영유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추씨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하여 산을 헤매다 마침 흰털을 가진 짐승을 발견하여 가지고 간 총으로 짐승을 쏘았습니다.

그러나 죽은줄 알았던 짐승은 총알을 받아 땅에 떨어뜨리고 태연하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추씨는 다시 여러 번 총을 쏘아댔습니다. 그러나 짐승은 그 많은 총알을 발로 받아 땅에 수북하게 쌓아 놓고 꿈쩍도 안하고 있었습니다. 추씨는 기진맥진한 가운데 지쳐서 그만 땅에 쓰러졌습니다.

이때 집에 있던 아들 갑산은 사냥 나갔던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고 총소리만 계속 들리자 걱정이 되어 총성이 들리던 곳으로 가보았습니다. 아버지가 지쳐서 쓰러진 모습에 놀란 갑산은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이미 죽은 몸이지만 너만은 살아야지.” 갑산에게 집으로 빨리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아들 갑산은 주변에 흰털이 있는 짐승과 그 앞에 쌓여있는 총알들도 보았습니다. 아버지가 말하였습니다. “저 짐승은 아무리 총을 쏘아도 총알을 받아 땅에 놓으니 어서 피하거라.”

아들 갑산은 의지가 강한지라 아버지의 총을 갖고 화약만 넣은 채 총을 사정없이 계속 쏘아댔습니다. 그 짐승은 아들의 총 쏘는 묘기에 놀라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쓰러진 짐승은 꼬리가 아홉개가 달린 백호였습니다.

이 호랑이는 그 당시 100년을 이곳에 살면서 인간에게 피해를 주었다 하여 그 후부터는 구미호(九尾虎)로 불리워졌고 이 산을 아버지 추씨와 아들 갑산의 이름을 따서 그 후부터는 추갑산(秋甲山)이라고 불려져 내려온다고 합니다.

학칠령 골

옛날 상남면 상남 3리에 살던 어떤 사람이 아버지 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명당에 모실 생각으로 지관풍수설에 따라 집터나 묏자리 따위의 좋고 나쁨을 가려내는 사람(地官)에게 산소를 봐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지관은 먼저 다짐을 요구했습니다.

“산소 자리를 내가 잡아주되, 내 말을 절대로 어겨서는 안 됩니다.” 상주는 지관에게 그러겠다고 쉽게 약속을 했습니다. 지관은 양지바른 한 골을 묫자리로 잡아주었고, 그는 지켜야 할 것들을 알려주었습니다.

“산자리를 팔 때 넓적한 돌이 나오면 더 이상 파지 말고 관을 내리십시오. 그러면 자손 중에 귀인이 나와 집안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묘지를 팔 때 아무리 친한 사람이 찾아오더라도 아는 체 하지 말고 인부들이 바위를 뒤적이지 않도록 지키십시오."

장삿날이 되어 그 상주는 지관이 가르쳐 준 곳에 묘를 폈습니다. 상주는 인부들이 묘를 파고 있을 때 처음에는 지관의 말을 지키느라고 살펴보았으나 평평한 돌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관의 이야기가 차츰 믿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럴 즈음 그곳으로 찾아온 이웃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상주는 묘지를 지켜보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때 인부들은 드러난 넓적한 돌을 파 일구었다. 인부들은 그 돌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몰랐기 때문에 드러낸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속에서 학 한 마리가 ‘푸드득’ 날라 올라 고개 너머로 날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뒤 늦게 그것은 본 상주는 후회해도 이미 늦었습니다. 날아간 학을 다시 잡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지요. 묘지에서 학이 날아간 후 지관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인지 그 집안을 일으킬만한 인재는 영영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상주가 지관의 이야기를 믿지 않고 학을 날려 보냈기 때문에 그 후손 중에는 등용되는 인재가 없다고 믿었으며 묘지에서 학이 나와 산너머로 넘어갔다고 해서 이곳을 ‘학칠령’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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